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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을 쓴 고려 중기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였던 김부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김부식은 우리나라 역사의 보물인 삼국사기를 편찬한 주저자이자,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인물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했을까요?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김부식의 출생과 성장
1075년 경주에서 태어난 김부식은 문벌 귀족 집안의 자손이었습니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스물두 살의 나이에 벼슬에 올랐습니다. 그 무렵에는 문벌 귀족들이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자 겸이었는데, 왕실과 혼인하여 외척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딸을 예종과 혼인시키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이 14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국정 농단이 시작되었고 김부식은 이를 보며 나라를 걱정했습니다.
신하들은 이자겸이 무서워 눈치보기에 급급했지만, 김부식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연회에서 이자겸과 왕을 나란히 앉게 하자는 간사한 신하들의 발언에 김부식만은 반대하였습니다. 인종은 올곧은 김부식의 말과 행동을 믿음직하게 여겼습니다. 이자겸은 또한 인종에게 여러 차례 독살을 시도하자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인종은 이자겸을 귀양 보내고 김부식에게 큰 벼슬을 내렸습니다.
이 시기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고려에게 자신을 섬기라고 요구하자 서경 출신 관리들은 오랑캐로 여기던 여진족을 받드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이때 김부식과 몇몇 관리들은 금나라에 대항하지 말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서경 출신 세력들과 개경 출신 관리들은 서로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이 때 나라 안에 '개경 땅의 기운이 다했으니 도읍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때 마침 정지상이 인종에게 묘청이라는 스님을 소개하였고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기를 제안합니다. 인종은 오랫동안 이자겸을 비롯한 개경 귀족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묘청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묘청이 알려준 '대화궁'이라는 곳에 궁궐을 짓게 하였습니다.
김부식의 정치적 활동
김부식은 금나라와 함부로 맞서면 나라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면 개경 귀족들의 기반을 완전히 뒤흔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인종을 말렸습니다. 김부식의 반대에 마음이 급해진 묘청은 서경 천도를 앞당기기 위해 꾀를 내었습니다. 대동강 강물에 기름을 잔뜩 넣은 떡을 빠뜨려 물 위에 오색 빛이 돌게 하고는, 하늘이 기뻐하는 뜻이라며 인종을 속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김부식은 "묘청은 오만한 자이므로 하는 말이 괴상해 믿을 수 없습니다. 속히 물리치시길 바랍니다."라고 대항하였습니다. 결국 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 서경 천도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묘청은 속내를 드러내며 1135년 서경에서 조광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묘청은 제멋대로 '대위'라는 나라를 세우고 군사를 모아 개경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인종에게 황제로 모실 테니 서경으로 와달라고 전령을 보냈습니다. 인종은 이에 김부식에게 반란을 진압하게 하고 개경에 남아있는 묘청의 무리들을 잡아들여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말라는 인종의 명령에 김부식은 항복을 권하여 잘못을 뉘우친 자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묘청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돌아오자 인종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김부식에게 큰 상을 주고 자신의 가까운 곳에 두어 나라의 중대사를 정비하였습니다.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라가 편안해지자 김부식은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인종은 계속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완고한 김부식의 뜻에 인종은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인종은 은퇴를 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역사책을 만드는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약 3년간, 김부식은 역사책 편찬에 몰두하였고, 인종이 보내준 열 명의 관리들이 그를 도왔습니다. 김부식은 '옛일을 그대로 기록할 뿐, 만들지는 말라. 반드시 기록에 있는 것만 그대로 살피고, 더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며 진실만을 적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완성한 삼국사기를 인종에게 바치자 크게 기뻐하며 수고를 칭찬하였습니다. 인종이 하늘로 떠난 뒤에도 인종의 업적을 기록한 <인종실록>을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1151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삼국사기>는 오늘날까지 대대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입니다.
후대의 평가
김부식은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고 후대에 남겨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배움과 깨우침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역사의 올바른 기록을 통해 한반도 고대의 역사인 삼국시대의 기록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위인들의 뜻을 기억하고 올바른 역사를 배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성장하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